“밥 대신 초코파이” 군산 개야도 탈출한 동티모르인
- 박 주하
- 2024년 2월 15일
- 4분 분량
“밥 대신 초코파이” 군산 개야도 탈출한 동티모르인

동티모르 국적의 아폴리(본명 Carreia Cabral Apolinario·33)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섬 개야도에서 지난 8월 31일 ‘탈출’에 성공했다. 섬에서의 삶은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장님이 시키는 일’을 ‘쉬지 않고 했다’고 한다. 근로계약서는 서류에 불과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욕을 먹기 십상이었다. 사장님 허락 없이는 섬 밖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상태였다. 아폴리는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사장님과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폴리는 27살이던 2014년 6월 E-9-4 취업 비자(어업)로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한국에서 5000㎞나 떨어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에서 온 아폴리의 두 손에 일가족의 생계비와 동생들의 학비가 달려 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여섯 남매 중에 아폴리를 빼고 대학생이 셋이나 된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동생도 하나씩 있다. 아폴리는 대학을 중퇴하고 가족을 대표해 생계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아폴리는 “그래도 다른 남매들이 공부를 더 잘해서 제가 학교를 안 다니는 게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일해서 손에 쥘 수 있는 건 월급 190만원 수준. 계약서상으로는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실제 근로 시간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벌어야 했다. 동티모르는 청년 실업률이 높은데다가 월급이 평균 115달러(한화 13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무려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래서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도 관련 규정이 허락하는 최장 5년 기간을 가득 채우고 귀국했다가 지난해 재입국했다. 사업장은 한 차례도 옮기지 않으면 ‘성실 이주노동자’ 자격을 받아 같은 사업장에 다시 취업할 수 있다. 한국에 다시 오기 위해서라도 사장님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노예의 삶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아폴리는 어머니에게 힘든 내색도 하지 못한 채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힘든 삶은 형제들에게만 털어놨다.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아폴리는 “어머니가 알게 되면 걱정을 많이 하고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서 어머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어머니는 아폴리에게 “일 할 때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일에만 집중해라.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다시 섬에 돌아왔지만, 부당한 대우를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아폴리는 “돈을 벌려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덜 힘든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말도 없이 일해야 했다. 배를 타는 날은 잠을 1~2시간 밖에 못 잤다. 아폴리가 몇 차례 휴식 시간을 요구했지만 사장님은 “계속 일하라”고만 했다.
마침 지난 7월 인권단체가 섬을 찾았다. 도서 지역 이주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아폴리는 실태 조사에서 “배에서 일할 때는 밥을 잘 안줘서 초코파이를 먹었다” “자유롭게 섬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쉬는 날도 없이 하루 평균 15시간씩 일했다”고 얘기했다. 인터뷰 장면이 지역 방송국을 통해 보도되자 사장님은 크게 화를 냈다. 아폴리의 목에는 작은 상처가 남아 있는데 아폴리는 사장님한테 맞은 흔적이라고 주장했고, 사장님은 아폴리가 자해했다고 반박했다.
섬을 떠날 자유도, 일을 그만 둘 자유도 없었다. 부당한 처우 등을 근거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아폴리에게 그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아폴리가 할 수 있는 건 “쉬고 싶다”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 때마다 사장님은 “안 된다”고 했다.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섬을 떠나던 날, 사장님은 “너희는 경찰도 없어. 낙동강 오리알이여”라며 “너희 마음대로 들락날락 못해. 가방 싸가지고 가”라고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그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아폴리는 동티모르어로 “라 콘텐티 리우”(전혀 행복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강조 의미의 부사인 ‘리우’를 꼭 붙여 말했다. 아폴리는 “일을 열심히 해도 매일같이 욕만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가서 일을 하면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일을 시킬 줄을 몰랐다”고 덧붙였다.
아폴리는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나온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참고인으로 신청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 문제에 대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려는 취지다. 아폴리는 “제발 쉬는 시간 좀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저랑 비슷한 상황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여러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담긴 끔찍한 현실

휴일 월 평균 0.1일. 하루 평균 노동 시간 12.6시간. 하루 평균 휴식 시간 0.7시간.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가 지난 7월 개야도 이주노동자 4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다. 1년 동안 단 하루 쉬었다는 얘기가 된다. 인권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고립된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과 이주노동자라는 특성이 맞물려 노예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개야도의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봄에 꽃게를 잡다가 여름에는 멸치를 잡았다. 겨울에는 김 양식을 했다. 악천후로 배가 뜰 수 없는 날에는 육지에서 그물 손질을 해야 했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겨운 삶이 계속됐지만 손에 쥐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제 발로는 섬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한 이주노동자는 실태조사에서 “비가 와도, 태풍이 와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좁고 지저분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다 고용주가 부르면 곧바로 일어나 바다로 나갔다. 선상에서는 주린 배를 잡고 파도와 싸우며 무거운 그물을 끌어당겨야했다. 섬으로 돌아올 때까지 제대로 된 밥이 나오지 않아 간식으로 한나절을 버텼다. 실태조사에서는 “배를 타면 새벽 5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는데 밥을 주지 않았다. 중간에 빵 한 개나 초코파이 두 개만 줬다. 일을 다 마치고 돌아와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이 여럿 나왔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개야도에는 병원이 없고 보건소만 하나 있다. 일부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업무 중 다쳐도 보건소에 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일하다 부상을 당해도 산재보험이나 어선원재해보상보험에 대한 인식이 없어 본인이 치료비를 지불하는 경우도 잦았다.
제 발로는 육지로 나갈 수가 없었다. 섬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여객선을 타야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여객선의 매표소에 가면 매표 담당자가 고용주에게 연락해 출도를 허가했는지 확인했다. 고용주가 “섬에서 나가도 된다고 한 적 없다”고 말하면 노동자는 표를 사지 못해 돌아와야 했다. 감금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개야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상 근무 시간은 월 200시간 수준이지만, 실태조사 결과 이주노동자들의 실제 월 평균 근로시간은 약 378시간 수준이었다. 월급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만 받았지만, 실제 근로 시간은 계약서를 지키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은 그만큼 돈을 덜 받았다고 주장한다.

개야도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군산지청에 진정서과 고발장을 접수했다. 군산지청 관계자는 “접수된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겠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 유관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협조해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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